민음 아카데미 2013년 1학기 개강
설레임과 기대감을 안고 신청, 그리고 첫 강의 수강
간밤의 꿈처럼 다 잊고 거품처럼 사라질까봐 서둘러 후기 작성
강의 내용을 요약 발제하려 함 (이런거 괜찮은건가?)
1. 종이
이야기의 시작은 종이 부터다. 종이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이다.
인간의 불멸과 영원성에 대한 욕구로 기록이 나타났고, 다양한 도구가 실험 대상이 되었다.
비교적 이른 시기(A.D.105)에 만들어진 채륜의 종이는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죽간과 300년 동안 경쟁하게 된다.
공문서를 기록하였던 죽간은 그보다 편한 종이의 등장에도 꽤 오랜시간 생명력을 유지하는데,
5호 16국 시대에 낙양성이 불타면서 함께 불탄 죽간을 대신하여 종이가 사용된다.
이를 통해 존재했던 미디어는 어떤 파멸적 사건 없이는 쉽게, 혹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공적인 기록보다 사적인 기록이 새로운 형태로 쉽게 옮겨 감을 알 수 있다.
600 여년간 동북아에서 독점되던 제지기술은 잘 알려진대로 '탈라스전투'를 통해 이슬람으로 전해진다.
이슬람은 종이를 통해 코란과 아랍 설화를 기록하였고, 그리스 로마의 지식 체계를 아랍어로 기록하였다.
이것이 고대 문예 부흥 르네상스의 토대가 된 것이다.
1200년 경에 종이는 중세 유럽으로 전해지고, 그 후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영국에서 띄어 쓰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름이 남아 있는 저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개인이 직접 글을 쓸 수 있게 되면서, 중세의 암흑 시대를 지나, 근대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후 책이 등장하면서 책의 가격이 형성되고, 독자가 생기고, 전문적인 출판업자가 생겨난다.
15세기 구텐베르크에 의해 활자인쇄술이 발명되면서 바야흐로 인쇄 혁명이 일어나고,
명실공히 종이의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종이의 시대는 지식과 정보의 전달을 읽고 쓰는 것 만으로 단순화하였고,
근대 이후 모든 시험은 읽는 능력만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2. 읽기
구약 성서의 첫 부분에 창세기와 출애굽기가 있다. 이 두 권의 책 사이에 나타나는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세기에서는 문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 시기에는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실현된다. 목소리의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출애굽 사건 이후,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를 받으며 문자의 시대가 시작된다.
당시의 시나이 문자는 당시 대부분의 고대 문자가 표의 문자 였던것과 달리 표음 문자였다.
표음문자는 말과 뜻이 분리되는 문자였고, 이는 생각의 추상화를 가능하게 하여, 추상적인 개념을 문자로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시나이 문자는 자음만 존재한 불완전한 문자였으며, B.C.700년 경 그리스에서 자음과 모음을 갖춘 희랍어가 완성되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시대에 소리는 완전하게 문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나아가 순서가 있는, 즉 논리를 갖춘 이야기로 기록되었다. 이것이 바로 철학이며, 이때부터 표준화된 지식이 나타난 것이다.
중세 시대의 읽기는 낭독이었으며, 읽는 것은 곧 공연이었다.
개인적인 읽기, 즉 묵독이 가능해지면서부터 사람들은 위험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위험한 책이라 함은 당시 중세적 질서를 위협하는 소위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는 책, 그리고 '포르노그라피'였다.
이 위험한 책들이 근대의 아침을 불러온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묵독은 또한 깊이 몰입해서 읽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로써 어휘가 확장되고 섬세한 글씨기가 나타나면서
'작가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 시기 근대를 지배하는 글쓰기 양식은 소설이었고, 이는 독서의 몰입과 대중화를 이끌었다.
한편 인쇄와 출판 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손안의 책이 가능해졌고, 책을 개인이 소장하였으며, 개인 서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독서는 일상화 되고, 더 더욱 깊이 읽기가 가능해졌으며, 읽는 것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읽기의 지배는 책이 내용으로만 판단되는 것이고, 책의 읽는 기능이 다른 기능을 압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컨텐츠 중심의 흐름이 전자책을 등장시킨 것이다.
전자책의 등장은 책의 역사에 처음부터 내재된 것이었으며, 필연적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3. 화면
화면 역시 정보를 표시하는 도구이며, 이것은 곧 읽을 거리이다.
그리고 과학 기술의 발달은 우리 일상의 모든 곳에 화면을 출현시켰다. 이것은 종이 책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화면과 종이는 둘 다 정보를 표시하고 있지만, 화면은 끊임 없이 변화하며 흐르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종이는 고정시킨 형태로 존재한다. 즉 시간을 제한하는 컨텐츠이며, 상품이면서 문화재이다.
화면은 그 흐름을 주된 특성으로 하기 때문에 몰입을 방해한다.
가볍게 뉴스를 보기 위해 클릭한 포털사이트는 우리를 끊임 없이 낚시질 해대며 망망대해로 끌고 가곤 한다.
산만해지고 생각하지 않는 우리는 어쩌면 몰입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는 근대의 독자들처럼 자신의 내면 세계를 만들어가는 읽기가 아닌,
현실세계와 웹 상의 사이버 세계를 연결하는 지식만이 필요할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렇게 근대가 소멸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책이란 무엇인지 묻게 된다.
4. 책
책은 본질적으로 도구이면서 기계이다. 따라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화 발전해 갈 것이다.
앞으로의 책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갖게 되지 않을까.
모듈화-분리 : 현대인은 전체를 소비하지 않고 잘라서 소비한다.
음반 전체가 아닌 한 곡, 한 곡도 전체가 아닌 후렴구만을 소비하는 것처럼...
복합화-관람 : 다른 컨텐츠와의 결합으로 소리나 영상을 담은 책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개별화-편집 : 개인 맞춤형, 더 이상 대량 생산의 공산품이 아닌 나만의 책을 갖게 된다.
소셜화-커뮤니티 : 중세의 공동읽기로 돌아가는 포스트 모던 중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통섭화-플랫폼 : 한 권의 책을 통해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책의 사용'이라는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책은 물론 읽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책을(으로, 에, ...)
쓰고, 뒤적이고, 선물하고, 모으고, 장식하고, 만지고, 공부하고, 과시하고, 기념하고, 불태우고,
베개로 배고, 받치고, 만들고, 조각하고, 낙서하고, 예술 하기도 한다.
어쩌면 전자책의 미래는 종이책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시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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